Perpetual: 권세진 Sejin Kwon
권세진의 이번 전시명인 <Perpetual>은 작업의 소재인 퍼페추얼 캘린더(perpetual calendar)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반복되는 시간과 일상’을 은유한다. 그동안 자신이 직접 찍은 풍경 사진을 화폭에 담았던 이유는 일상 속에서 발견한 인상적인 순간, 즉 한 개인의 기억과 감정의 발화점을 재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만 특별한 이미지가 아닌 좀 더 보편적인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이 관람자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이미지를 최소화 혹은 중성화하면서 기억과 감정을 발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작가는 지인의 차에서 퍼페추얼 캘린더를 우연히 발견한다. 다이얼을 돌려 월과 요일을 설정하는 이 작은 탁상용 캘린더를 보고 그는 시간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그리고 캘린더에 그려진 이국적인 풍경 역시 그의 눈길을 끌었다. 퍼페추얼 캘린더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유독 작가의 관심을 끈 것은 월과 요일을 다이얼로 돌릴 수 있는 하단과 각 나라의 랜드마크와 날짜를 보여주는 원형 구조가 결합된 캘린더이다. 이것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서양에서 유행했던 여행기념품이었다. 오늘의 날짜를 표시하는 달력이면서 또한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인 것이다.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사물을 보고 작가는 오랜만에 그려보고 싶은 소재를 찾은 것 같았다고 말한다.
재미있게도 권세진은 7개의 퍼페추얼 캘린더를 그렸지만, 그는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림은 해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찾은 이미지를 보고 그렸다. 그 이미지에는 흠집과 같은 사용감이나 표면의 색바램 등 시간이 축적된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 평소 자신이 찍은 풍경 사진을 그림으로 옮겼던 작가에게 사물뿐만 아니라 물건의 소유자들이 직접 찍어서 올린 이미지 그 자체가 흥미로웠을 것이다. 오래전에 올린 게시물의 경우 사양이 낮은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찍어서 사진의 화질이 낮기도 하고 촬영한 공간의 조명, 배경 공간, 사진의 색감 등 사진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 함께 박제되어 있다. 여기에는 사물이 담고 있는 과거와 사진이 담고 있는 과거, 이 두 가지의 레이어가 덧씌워져 있다. 작가에게 이미지를 찾아내고 선별하는 과정은 마치 시간의 층이 겹겹이 쌓여있는 유물을 발굴하는 과정과 다름없다.
퍼페추얼 캘린더 연작은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에서 벗어나 불특정 다수의 보편적인 과거를 소환하는 작업이었다. 그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추억이 없더라도 도식화된 랜드마크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날짜와 요일은 ‘누군가’의 노스탤지어를 상상하게 한다. 이 사물을 맨 처음 발견하고 간직했던 타자의 오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작업을 이어가던 권세진은 문득 캘린더 안의 숫자에 주목하게 된다. 퍼페추얼 캘린더의 형상을 빌리지 않더라도 숫자만으로 ‘기억과 감정의 발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각자 자신에게 의미 있는 날짜가 있다.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날짜도 있지만 반대로 외면하고 싶을 날짜도 있다. 단언컨대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기억과 연결된 날짜가 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Today 연작이다. 작가는 종이 위에 숫자를 ‘그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숫자가 있는 풍경을 그렸다. 퍼페추얼 캘린더의 형태는 모두 생략하고 숫자가 보이는 부분만을 확대한 이 시리즈에서, 숫자는 마치 창문 너머의 풍경처럼 보인다. 숫자뿐만이 아니라 칸 안의 그림자, 외부의 빛에 의한 색감의 변화, 중앙에서 약간씩 빗겨나간 숫자의 위치를 모두 반영한 그림이다. 그는 네모난 공간 안에 숫자와 빛과 그림자가 있는 모습이 하나의 형식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이 간결한 기호와 섬세한 빛의 변화는 그동안 작가가 고민했던 질문, ‘구체적인 형상이 없이도 타인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대답 혹은 어떤 실마리를 제공했다.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익숙한 권세진에게 텅 빈 공간과 숫자로만 구성된 그림은 그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때는 붓질과 색이 철저하게 그 대상을 따른다. 재현을 위한 붓질이다. 그런데 Today 연작을 그릴 때는 오로지 균일한 붓질과 색채만으로 그림이 완성된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각 색채만의 뉘앙스와 묘사로부터 해방된 붓질은 그에게 어떤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Today 연작 역시 실물을 재현하지만, 실제 대상의 평면성과 기호체계의 간결성으로 인해 그림은 구상적이지만 또한 추상적이다.
2미터 크기의 화면에 그려진 숫자와 넒은 색면은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것은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낸 오묘한 색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기호의 압도적인 크기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둘 다거나. 작가는 숫자가 시공간을 월경하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누군가에겐 과거의 년도, 날짜, 시간을 상기시키는 통로가 될 것이며 누군가에겐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 가는 통로일 수도 있다. 권세진은 색채가 기억과 감정을 소환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숫자가 만든 통로의 문을 열어주는 것은 색채인 셈이다.
Sejin Kwon’s latest solo exhibition title <Perpetual> alludes to both the perpetual calendars--the subject of his work--and to his long-explored idea of “recurrent hours and the mundane.” A significant portion of Kwon’s previous works were based on photographic reference, namely landscapes he photographed himself. The photoreference method was a means to capture the extraordinary from the ordinary, a glimmer of his individual remembrance and spirit. However, the artist wanted to paint something less idiosyncratic and more ecumenical in its imagery, as he felt such works would help more people connect to his ideas. And that is what he has done, minimizing and even tempering and curtailing the image to kindle the affective and mnemonic glimmer to a more evident glow.
The particular perpetual calendar design was encountered by chance in an acquaintance’s vehicle. The metallic desk calendar had dials to adjust time--the month and weekday--and the very idea of “manipulating” time intrigued the artist. The exotic scenes atop the on the calendar also drew his attention. Perpetual calendars come in all shapes and sizes, but the one that caught Kwon’s attention was the metal vintage type with month-week adjustable dials at the bottom with a flippable circular landmark panel with the date. The calendar design was a popular travel souvenir in the West, from the 60s to the 80s. Contemporarily, the month and date represented the present today, but presentlyit is a reminder of what has or may have happened in the past on that date. Clearly an object open to interpretation, but the artist was joyous for his discovery of a subject he felt a strong desire to paint. It had been a long time.
Sejin Kwon’s painted a total of seven perpetual calendars, yet he does not own any such calendar. All paintings were completed by referencing photos online, such as those dealing in used, second-hand goods. The accumulation of time and image with dents and scratches in the calendars were clear enough to transfer from object to photo, and now into painting. To the artist who had previously painted landscapes referencing photos he took himself, painting objects from photos taken by others was a new turn. Photos from older found posts were taken with lower quality cameras, or smartphones. The quality and artifacts present in photos also became embedded alongside the implied spaces and lighting, background and color grading of each photo. The past is present in two layers in these paintings. First is the past marked by the object and second is the past captured in the photo; all photos are of the past. Seeking out such photos and making his selection resembled what the artist imagined to be an archaeological dig, hidden on the other side of time.
The <Perpetual calendar> series is a break from the artist’s known and familiar memories. They do not reference anything private as his previous works have. The calendar summoned the memories of an unspecified universal past. Even for those who do not personally identify with the object, the dioramic landmarks and dates and days are recognizable enough to jog up an imaginary nostalgia of the individual who first purchased the object as a souvenir--a reminder to a certain place and time by a person long time ago. In the process of his work, the artist’s gaze became fixed on the calendar’s date readout, and a thought grew on him: Could similar memories and emotions be evoked and sparked just from the date readout without showing the whole of the perpetual calendar? Each person has a date more meaningful than others. Some dates are particularly more meaningful. Some come with great anticipation, while others have a looming inescapable dread to them. We all have dates linked to personal memories.
And so the artist began his <Today> series of paintings. He drew the numbers on paper. That is to say, he painted a numeric landscape. The close-up of the small date readout effectively became a window into a number-scape on the other side; the rest of the perpetual calendar is completely omitted. Everything about the number readout is very much present, from the offset position and inking of the number to the shadow cast by the frame of the readout frame, and even the hues implying a certain lighting. He said that the composition of numbers, lighting and shadows, all within the square space felt like form. These simple numbers and delicately painted shadows and hues became clues to a two-fold question the artist had been long pondering ‘Is it possible to evoke memories and feelings in others without tangible form? If so, then how?”
Accustomed to painting his objects in detail, the largely empty space populated only by a number was a strange new experience. Kwon’s brushstrokes and colors follow the object with great fidelity when describing in detail. The brush is laden with reproduction. Yet the Today series of works are completed with only the most uniform strokes and use of color. Freed from the burden of nuanced colors and realistic reproduction, he even felt a sense of newfound emancipation. The Today series of works are based on an actual object, but the flat and curt symbol system has given the paintings both figurative and abstract quality.
The 2-meter panels populated with color and a number make for a meditative ambiance. Perhaps it is the interplay of light and shadow creating an intriguing color dynamic. Perhaps it is simply the overwhelming oversize of a symbol on screen. Perhaps all of the above. The artist hopes that the date-numbers serve as space-time corridors. The date will spirit some away to a certain year, month, date, and time in the past. Others, the future. For Sejin Kwon, colors were the doorway to memories and feelings. With a date to get to and the color to open a path, who needs enough road to get up to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