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들 Shapes: 전현선 Hyunsun Jeon
실물과 닮은 것이든 아니든 그림 속의 모든 형태는 의미와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형태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내고 내용을 읽어나가는 것이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현선의 개인전 <형태들(Shapes)>은 의미와 내용이 지워진 ‘텅 빈’ 형태만을 보여준다. 그들은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자의 시선을 캔버스 프레임 밖으로 돌리는 역할이나 혹은 나란히 놓이거나 마주 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니 전시장 안에 그림은 가득 차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텅 비어 있다.
그림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림의 크기로 인해 관자는 한 번에 이미지를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그림 안으로 들어가 버린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그림이 더 이상 ‘그림’이 아닌 ‘공간’으로 인식되는 낯선 경험이다. 작가는 화가로서 그림의 안과 밖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는 캔버스의 화면 안에 서사를 담아내는 것(그림의 안)과 함께 그림이 단순히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공간 그 자체로 확장하는 것(그림의 밖)을 시도한다. 이것은 한 작품에 모두 담기기도 하고 혹은 분리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후자에 속하는 그림의 밖, 다시 말해 공간으로 확장하는 그림들이다.
관자를 압도할 정도로 전시장의 크기에 맞게 그림으로 에워싸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러 캔버스를 조합했기 때문이다. 여백이 없이 캔버스를 연결하는 설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한 점의 그림에 몰입하는 기존의 감상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림의 화면이 커져야 하는데 캔버스의 크기나 작업 공간의 크기 등 현실적인 이유로 여러 개로 분할한 화면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을 이루게 했다. 그림은 한 화면에서 다른 화면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요소가 반복된다거나 형태가 밖으로 확장할 수 있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그는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공간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하고 확장할 수 있는 유닛 가구처럼 자신의 그림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기능성을 갖게 했다.
그렇다.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은 마치 유닛 가구처럼 공간에 맞게 재구성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나란히 걷는 낮과 밤>, <두 개의 원기둥>, <두 개의 기둥과 모서리들>, <위로 자라는 그림 1> 그리고 <위로 자라는 그림2> 이렇게 5점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세로 1.5미터, 가로 2미터의 캔버스가 8개 혹은 4개가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그림 5점을 해체하고 재조합 한 것이다. 각 그림은 한 화면 안에서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위∙아래 혹은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나란히 걷는 낮과 밤>은 일출이나 일몰과 같이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빛의 변화를 묘사했다. <두 개의 원기둥>, <두 개의 기둥과 모서리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라는 원기동을 그렸고 <위로 자라는 그림> 1과 2는 위로 무한히 연장되는 도형을 표현했다.
이제 화면 안으로 들어가 보자. 그림은 얼핏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도형 사이의 미세한 음영으로 공간감이 느껴지고 불현듯 익숙한 사물들이 등장한다. 전현선은 그림을 ‘추상화’ 혹은 ‘구상화’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유는 그림은 기본적으로 ‘추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림이란 점에서 선이 되고 선에서 면이 되면서 만들어진 도형들의 집합이다. 그런데 그 도형들의 형태가 실제의 사물과 유사할 때 구상화가 된다. 조각에는 평평한 면 위에 일부 대상만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부조 작품이 있다. 작가는 평면과 입체가 결합된 조각 작품처럼 추상과 구상이 결합된 화면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화면의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 마치 포스트잇을 붙인 듯이 그림 속에 그림이 등장한다. 전현선은 2016년부터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평소 여러 가지의 일을 동시에 생각하고 처리한다고 한다. 노트북에 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처리하거나 어떤 주제로부터 시작한 대화가 다른 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듯이 말이다. 그래서 한 화면에 떠오르는 단상들을 그대로 늘어놓는 것이 자신에게 더 맞는 그리기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림과 그림 속 그림의 관계는 매번 다르다. 때로는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 속 그림들은 화면의 중심으로 고정될 관자의 시선을 화면의 주변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면서도 때로는 전체 화면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힌트가 되기도 한다.
갤러리2 중선농원은 오롯이 전시장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온전히 작품으로 꽉 채울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전현선은 관람객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성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작품이 설치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일 것이다. 네 개의 벽면을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으면서도 전체의 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밀고 당기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공간 말이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그렸는지, 어떤 내용인지 떠올리기보다는 ‘나를 둘러싼 그림과 그 안에 존재하는 나’라는 상황에 집중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전시 제목의 <형태들>은 그림만이 아닌 그 안에 존재하는 이들을 포함하는 말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