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지 않아: 유현경 YOU Heongkyeong
유현경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진술해야 하는 순간에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질문을 기다렸고,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상호작용’이라는 단어를 썼다. 맞는 말이다. 타자가 존재할 때, 비로소 나 자신이 드러나는 법이다. 결국 모든 인간은 타자와의 갈등과 구별 짓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나의 인상과 성격과 기질은 타자와의 상호작용에 따른 종합적인 분석 데이터이다.
유현경의 인물화 작업은 상호작용의 파생물이다. 그는 그림의 모델에 대해 최대한 편견 없이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한 의도는 모델에 따라 달라지는 조형 형식이 반증한다. 동일한 인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그리고 싶지 않은 존재와의 대면, 이 냉혹한 상호작용의 결과마저도 그림을 그리게 하는 동기였다고 한다. 결국 인물화 작업은 모든 타자를 인정하고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작가는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며 은유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는 더이상 화가가 아니다.
갤러리2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정작 전시장 내부에는 인물화가 없다. 자 이제 우리의 차례이다. 나 자신과 작품 사이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유현경은 2014년의 대부분의 시간을 스위스 취리히와 남부의 티치노 지역, 영국 런던에서 보냈다. 당시의 그림은 인물화보다는 풍경화에 집중되어 있다. 환경의 변화와 한국의 삶에서 벗어났다는 마음의 변화는 인물이 아닌 자신이 속한 환경에 눈을 돌리게 했다. 그는 그 기간을 오롯이 ‘그림’만 그릴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유현경이 담아낸 풍경은 ‘풍경화’로 인식하기 쉽지 않다. 관자는 그림 안에서 풍경의 단서를 혹은 범인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겠지만 범인은 이미 그 자리에 없다. 남은 것은 그저 붓질뿐이다. 그는 물감으로 형태의 윤곽선을 그리거나 색을 입히기보다는 캔버스에 붓을 충돌시키고 그 움직임만을 기록한다. 우리는 몇 가지 특징적인 인상만을 제공받게 된다. 사실 물감과 붓질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그 기능을 포기하고 캔버스 위를 유영하는 즐거움을 쫓는 그림이다. 어쩌면 이것이 회화의 고유한 즐거움일지 모른다. 두 번 다시 재현되지 못할 서늘한 그 짜릿함 말이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던져졌을 때, 비로소 그 세계에 반응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유현경에게 그 세계는 타자의 내면이자 이국의 풍경일 것이다. 인물이든 풍경이든 ‘어떤’ 세계는 그에게 주어진 제한된 조건이자 환경이다. 부지불식간에 등장한 그 세계의 본질을 한눈에 꿰뚫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그림이 나와 내가 아닌 모든 것 사이의 상호작용인 만큼 우리는 그가 (잠시) 어떤 세계, 어떤 환경에 놓여있었음을 확인할 뿐이다.
또 다른 전시장에는 뉴욕 거리의 노숙자들을 개의 모습에 빗대어 그린 <homeless>를 비롯해 낙서 같은 그림이 채워져 있다. 상상만으로 그렸다는 이 그림들은 오랫동안 그려온 인물화들이 모체가 되었다고 한다. 낙서하듯 유희하는 그림들은 어떤 형식을 거부하는 제멋대로의 글쓰기 혹은 그리기다. 하나의 형식으로 통일되거나 코드화할 수 없는 그림이다. 유현경의 인물화와 풍경화가 대상에 대한 집중력과 쇄신 능력의 확신을 담고 있다면, 유희하는 그림은 그의 독특한 취향과 충동적이고 복잡한 내면을 담고 있다. 인물화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조형적인 측면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내면이 발화된 것이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작가는 뭐라고 대답할까.
주로 대형 인물화를 선보여 온 유현경은 이번 전시에서 대형 인물화를 과감하게 삭제했다.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달라진 붓질과 구상이 아닌 구성이라고 말했다. 콩트와 유치한 농담, 성적인 농담이 섞인 유희하는 그림 역시 그 이야기들은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구실일 뿐이며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붓질에 담겨 있다고 말이다. 그의 그림은 타자와의 상호작용에 따른 자신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 데이터이다.
YOU Hyeonkyeong’s portraits are outcomes of such interactions. According to her, the intention was to paint the subjects as unaffected to any prejudice. Such intentions are clearly observable in her choice of formative style which changes by model. It is also clear when drawing the same person. YOU explains that facing what she did not wish to draw, the outcome of the relentless interactions drove her to draw. So, in a way, all character painting work would have been a process of acknowledging the other and accepting the fact that the other was a condition of the self's existence. Without this process, the artist will be unable to paint, and be no longer a painter metaphorically nor realistically.
The solo exhibition at Gallery 2, there are no character paintings within the exhibition hall. Now it is our turn. Preparations are needed to accept the interaction between the self and the artist's works. YOU Hyeonkyeong spent most of 2014 in Zürich and Ticino of Switzerland, as well as some months in London. Her paintings concentrated on landscape rather than characters. Her awareness that she was in an unfamiliar environment that was no longer Korea; her life was no longer defined by a singular place, and she began looking to her environment. She refers to that year as a time of 'pure drawing bliss'.
The landscapes YOU has painted is not easy to recognize as landscape paintings. The viewer chases after such traces of landscapes into the scene but that sifts through like find sand in hand. Only the brushstrokes remained. YOU adds inks only the outline, or lightly dabs the canvas and adds movement sans colors. It leaves the beholder with a few distinct impressions. Ink and brushstrokes have long been considered the means to depict anything. Despite that possibility, YOU chooses pleasure of potential, to seek free-spirited swimming on canvas. Perhaps this potential and pleasure is distinct to painting. There is a free-handedness to it; it will not be reproduced.
It is only when we find ourselves thrust into a certain world that we also find ourselves responding in earnest to that world. To YOU Hyeonkyeong, that world was both the inner world of the other, and the sight of an exotic landscape. A certain world, be it a physical landscape or a person, it is a given set of standard and environment. When such a set of standard and environment is provided, recognizing its essence in a glance just not possible. As her paintings are an interaction between everything that is the self and everything else that is not, it is on the boundary, a temporary circumstance that we are passing by.
Another exhibition hall is filled with graffiti-like, doodle-like paintings, such as <homeless>, which is about the homeless people of New York. Told through a metaphor using dogs, and those other painting were all based on portraits that she had painted over years. The playful doodle-like paintings willfully deny being set in certain styles, painting and writing as she pleases. The works cannot be described in terms of a singular style or code. While YOU Hyeonkyeong's character paintings and landscape paintings embody confidence, focus, and the ability to change things, her more playful works embody a more unique tastes that were impulsive and even oxymoronic at times. Her statement that character paintings were helpful; does that only mean the formative aspect? What if the question was on whether the inner self became vocal only after interaction with the other?
YOU Hyeonkyeong had mainly presented large-scale character portraits made a decisive move to remove all of them for this exhibition. She described that her intentions coming into this exhibition was the evolved brushstrokes and the non-conceptual conceptualization. The paintings are saturated with low-hanging fruits and banal settings, euphemisms and innuendos, but those are just the substrates for paintings. The actual message is contained in the brushstrokes. Her paintings are a comprehensive analysis of herself, revealed through the interaction with the 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