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ectives: 이소정 Sojung Lee
그림은 무엇을 모방할 수도 있고, 작가의 내면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그림은 외부세계에서 빌려오지 않은 것이 없다. 세계의 모든 것은 그림이 될 수 있는 배아 상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 배아 상태의 존재들은 무의미, 무관심의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연이나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 발견될 뿐이다. 그 존재들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다듬는 것, 그리고 그 요소들을 구성해서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화가의 일이다.
이소정은 우연한 형태를 통해 구사할 이미지의 출발점을 찾는다. 그는 먼저 그림을 그릴 화면 위에 얇은 한지(순지)를 올리고 붉은 주묵을 붓으로 바른다. 그러면 얇은 한지를 뚫고 화면 위에 주묵이 스며든다. 이렇게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흔적에서 이미지를 발견한다. 이소정은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동굴 벽화의 형상을 발굴하듯이 숨겨진 형상을 찾아내고 거기에 무의식중에 떠오른 형상을 덧붙인다. 같은 제작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안료의 양, 붓을 움직이는 방향과 강도에 따라 화면에 스민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매번 다른 그림이 완성된다.
화면 위에 주묵이 스며든 흔적에서는 어떤 형상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즉, 모든 것은 가능한 상태일 뿐이다. 이소정은 우연히 만들어진 흔적을 통해 어떤 존재를 깨닫고 형상을 만들어낸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고 그 안에서 사람의 얼굴, 동물, 사물을 연상해 이름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흔적은 마치 살아있는 것, 변화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지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것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 양자 간의 접합을 이뤄내는 것이 이소정의 일이다.
이번 개인전의 전시명은 <Detectives>(탐정들)이다. 이소정은 자신이 탐정이 되어 주묵이 스민 흔적 안에서 숨겨진 단서를 찾듯이 작업했다. 그는 흔적이 자신으로부터 기인했지만, 그들이 스스로 태어난 존재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는 발견한 단서들을 다시 묵으로 덮어버렸다. 기름 성분의 주묵은 묵으로 덮어도 그대로 드러난다. 먹으로 그린 형상들은 먹이 다시 덮이면서 더욱더 진해진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으로. 자신이 찾아낸 단서를 덮어버리는 행위다. 정녕 자신이 찾아낸 형상들이, 단서들이 거기에 존재하는 것인가. 작가의 자기성찰과 겸손의 태도이다.
우연한 흔적에서 발견된 이미지는 이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이소정은 단서들을 통해 만들어낸 그림 중 4점의 작품에서 형상 부분만 본을 떴다. 그 4개의 이미지를 겹쳐 한 화면 위에 다시 그려냈다. 피규어를 만들 때 부품이 붙어 있는 판(런너)에서 필요한 부품만을 떼어내듯이 겹쳐진 4개의 이미지 중 작가가 원하는 부분만 새로운 화면 위에 옮겼다. 심열을 기울려 만든 4점의 작품은 결국 다른 작품을 위한 수단, 부품이 되었다. 그 4개의 이미지는 우연적인 흔적에서 탄생했지만, 어쩌면 새로운 그림을 위한 필연적인 탄생을 아니었을까.
이소정은 여기에 느낌표나 물음표 같은 문장 부호, 줄 바꿈이나 들여쓰기 같은 교정 부호를 추가했다. 그는 어떤 일에 열중하다 보면 자신이 몰입했던 그 이야기는 잊혀지고 문장 부호만 남는 듯하다고 한다. 교정 부호는 단서(이미지)를 고쳐내고 새롭게 조합하려는 작가의 마음이다. 이것은 우연한 흔적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발생한 이미지를 다시 조정하려는 의식적인 행위, 그 느닷없이 찾아온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일지 모른다.
확실히 인간은 자신의 운명의 주인공이 아니다.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이 인간을 끌고 간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바꿀 우연적인 사건을 의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사건을 판단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
Paintings sometimes reproduce tangible things, and at other times depict less tangible things from the artist’s mind. Wherever it comes from, it is borrowed from the outside world, relative to the canvas. To take that idea further, all things tangible or otherwise, seem to have an inherent potential to be reproduced or represented as image. However, before those things are transferred onto canvas, they seem not to matter, not significant, merely in a state of physical being, without matter. Exploring those states pre-matter, refining them and composing them into a state of matter is the realm of the artist.
Sojung Lee seeks starting points for her images in the most random forms. The artist’s process begins by applying a thin mulberry pulp paper over the surface to be painted. She applies cinnabar red ink (jumuk-朱墨), over the hanji to permeate to its own characteristics. The permeation is organic and at times, odd. Lee finds images in the random ink patterns as if by pareidolia, like archaeologist in prehistoric caves seeking murals. She draws out forms from chaos, and gives greater material to make the forms even more tangible. Even with a set pattern of work, the amount of dye, brush stroke and pressure cause a different outcome every time.
In the chaotic pattern of the red ink seeping into the paper, anything can be found. Everything is possible when it is in that state, but also merely a state a possibility. Traces lead to a realization of certain existences, which in turn give forth form. The practice is similar to looking up at the clouds in the sky and imagining familiar faces, animals, and object, pointing to it to draw attention to it and giving it a name. Traces have a life of their own that move and develop by their own accord, but to recognize and define what it may be, is to make it static. The junction between the dynamic undefined and the static defined is where Lee’s work is concerned.
Sojung Lee’s latest solo exhibition is titled <Detectives>. Lee worked like a sleuth seeking clues in the traces of red ink permeated throughout the surface. The permeating traces of ink was initiated by her, but once they began trickling into the hanji, she felt that it took on a life of its own. She painted over those hints and traces with ink, but the rich oils of the red ink are still very visible through the newly applied black ink. As more ink is applied, the traces deepen. The act of repeated cover up is a metaphor about covering one’s found clues. Are the found clues even there? The artist’s dissatisfaction with found clues shows a glimpse into her iterative process surrounding self-reflection and self-denial.
The images based on coincidental discoveries develop into something of a new dimension. Lee lifted the traced for of four of her works based on the coincidental ink seepage, and superimposed the traced lines to connect into a single form. Taking lines like they were pieces from a plastic model set, Lee took four lines from the images and transposed them to a new canvas. The four original works became merely the means for something else, almost like a perishable good. The four images from red ink occurs by chance, but the new image composed of them is perhaps an inevitable creation.
To the combined image, Lee adds grammatical symbols like questions marks and exclamation marks, as well as orthographic symbols like paragraph markers or indentation tabs. She says that when she is in a state of deep focus and flow into a particular task, she often feels like the story is forgotten and only the grammatical symbols remain. Orthography symbols are the artist’s desire to correct what has happened (image) and to restructure into a different status. A happenstance trace lead to a subconscious image, and now she is passing through a process of trying to control the outcome and accept what has unexpectedly.
Surely, the master of one’s destiny is not man alone. It is coincidence that drives life forward. We recognize coincidences that alter lives, and end up living to overcome them. We perceive and react to the most random of events, and we owe it to our being to find the clues to those events, and to accept those events as what it is;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