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1992-2017: 하상림 Sangrim Ha

13 April - 12 October 2019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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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초에 선이 있었다. 최초의 회화라고 불리는 구석기 시대의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미지를 만드는 가장 극단적이고 단순한 수단이 바로 선이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선은 실제 짐승을 대체할 수 있는 가상의 짐승을 그려내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은 길을 따라 걷는 걸음이다. 실물의 형상을 쫓아 평면 위를 걸어가는 걸음 말이다. 실물을 닮게 그리고자 하는 선은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걸음이다. 그런데 그 걸음에 몸동작의 리듬과 조화를 더 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춤사위가 된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걸음이 아닌 길을 유희하는 걸음의 과정이 즐거움이고 아름다움이 된다. 이것이 그림의 선이다.

 

하상림 작가의 그림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 역시 선이다. 그의 그림에서 선은 때론 전면에 드러나기도 하고 때론 화면에 언뜻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작가는 독일에서 유학하던 1986년을 ‘그림의 출발’ 시기라고 말한다. 이 시기에 포함되는 <UNTITLED>(1992, 93)은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추상화다. 망설임이 없는 붓질과 원색의 대비는 물감을 매개로 캔버스 표면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안착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서려 있다. 붓으로 넓은 면을 칠하고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부수며 작가의 몸짓이 곧 이미지이고, 이미지가 곧 작가의 몸짓이 되었다.

 

작가는 비행기가 낮게 날 때 보이는 땅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땅에 닿지도 않으면서 높게 날지도 않는 저공비행 중인 그 모습이 독일 사회에서 이방인인 자신의 상황처럼 느꼈던 것이다. 당시는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 ‘그림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 수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쏟아붓던 시기이기도 하다. 강렬한 색채와 붓질은 직관적으로 또한 거침없이 자신을 발언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강렬한 색채로 인해 당신이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세밀하고 자유로운 선이다. 하상림 작가는 그 선들이 씨앗이며, 잎새이며, 꽃이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 발견했다. 그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를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하던 시기를 지나 생각을 정제하는 시기였다고 한다. 선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는 작품인 <UNTITLED>(2000)은 말라버린 꽈리를 형상화했다. 그러나 그림은 눈앞에 놓인 사물을 묘사하기보단 꽈리가 갖는 식물의 시간성과 조형적인 특징만이 오롯이 남아 있다. 붉은 배경과 대조를 이루는 하얀 선은 작가가 숨을 참으며 한 번에 그은 선이다. 직선도 아니며 곡선도 아닌 가는 선은 식물성을 드러내면서도 선 자체를 즐기게 한다.

 

두 개의 캔버스가 한 화면을 이루는 <UNTITLED-W07029>(2007), <UNTITLED-W07030>(2007)은 아이보리빛 배경에 하나의 구심점에서 퍼져나가는 회색빛의 넓은 면과 선이 꽃잎을 연상시킨다. 작가 역시 활짝 핀 모란꽃을 보고 작업을 시작했고,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이 작업을 이어갔다. 무한한 공간에 부유하는 꽃들은 특정한 꽃의 재현은 아니다. 꽃의 보편적인 형태, 색채의 배제, 여백과 대비를 이루는 흑연의 금속성은 작가의 마음속에 남은 꽃의 ‘잔상’을 보여준다.

 

100만 년 전부터 인간은 시신과 함께 꽃을 묻었다고 한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꽃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꽃잎이 활짝 핀 절정의 순간에 무심히 소멸해버리는 꽃은 유한한 삶의 덧없음과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생의 순환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는 것,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그 사실을 꽃으로 은유하고 애도한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하상림 작가는 선으로 가득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감정을 배제한 간결한 선과 색의 대조를 통해 긴장감과 균형감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변화가 있다. 바로 실제 대상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직접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냈다. 이 시기의 모든 그림은 작가와 시선을 마주한 살아있는 식물들이다. 간혹 삭제되는 선은 있지만 임의로 더하는 선은 없다고 한다. 작가가 표현한 선은 식물의 잎맥으로 바로 그들의 생명선이다. 잎맥을 통해 이동한 물과 양분으로 식물은 살아간다. ‘살아있는 식물의 잎맥만큼 자신이 좋은 선을 그릴 수 있는가’라는 자기반성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자연의 그 풍부하고 경이로운 생명선 앞에 작가는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하상림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작업의 시기를 나누고 다시 한번 작업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마치 옛날 앨범을 꺼내 보는 듯이 작품을 살펴보면서 애틋함을 느낀 것이다. 그 시기에만 존재했던 자신을 작품 안에서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는 여러 경향의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선에 대한 집착이었다고 고백한다. 작가에게 선을 긋는 것은 식물을 통해 탄생과 죽음, 삶과 예술을 사유하면서도 길을 춤 추며 걷듯 유희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그러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