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co Sodi: 보스코 소디 Bosco Sodi

7 January 2020 - 28 March 2024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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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리학자들의 공부 방법 중 하나는 주변의 나무를 세는 것이었다고 한다. 나무를 세면서 세상의 이치를 탐구한 것이다. ‘나무를 센다’는 것은 나무의 수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특징을 세심하게 살피고 의미를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 담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제 사물을 통해 지식을 완전하게 한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 성리학자들의 나무 세기에서 알 수 있듯이 특히 자연은 학자들에게 우주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공부의 대상이었다. 자기 주변의 환경과 생명체로부터 지식을 깨우치는 것이 공부의 기본이었던 셈이다.

 

갤러리2 중선농원은 2020년 첫 전시로 보스코 소디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는 철학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열세 살 때 이미 달라이 라마의 책을 두 권이나 읽었고, 화학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덕에 주방에서 크고 작은 실험들로 화재나 작은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며 자랐다고 한다. 물질의 물리적 변화를 통해 정신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보스코 소디는 캔버스를 바닥에 수평으로 내려놓고 안료, 톱밥, 목재 펄프, 천연 섬유질과 접착제 역할을 하는 아교를 섞어 캔버스 위에 흩뿌린다. 두껍게 쌓인 물질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르고 표면이 갈라지는데, 환경에 따른 자연적인 이 형상이 그의 작품을 완성한다. 재료를 섞는 정해진 비율을 없다고 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매일매일 배합이 달라진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도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손을 사용해서 재료를 섞는다는 것이다. 수학적인 계산이나 정밀한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이러한 방식은 같은 환경 속에서도 작품이 저마다의 피부를 갖게 한다.

 

캔버스 위에서 물질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이 운동성이 작품을 완성하는 제일 중요한 과정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것은 물질이 저마다의 생명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환경과 물질 그리고 인간의 공생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질과 인간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생명을 가진 동일한 존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작가가 사용하는 자연에서 얻은 물질들은 나름의 생명력을 갖고 자신이 속한 환경 속에서 부여받은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투를 벌인다. 그 고단한 싸움은 인간의 삶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삶을 은유한다.

 

작가는 캔버스에 쌓인 물질이 첫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면 작업을 멈추고 변화를 지켜본다고 한다. 예상할 수 없는 자연적인 변화를 즐기는 심미적인 태도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은 와비사비(侘び寂び)라는 일본의 전통 미의식과 맞닿아 있다. 와비사비는 자연과 시간의 변화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현재에 집중해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와비사비의 정신은 인위적으로 가공하고 표백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변해가는 불완전함을 즐기는 태도인 셈이다.

 

보스코 소디의 작품은 다양한 물질들이 캔버스 화면에 부착된 부조 작업이기도 하다. 천연 재료를 통해 자연의 색감을 보여준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자연 그 자체이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서 씨앗을 뿌려 재배하듯 물질을 운동시키고 변화를 이끌어내어 자연의 상황을 캔버스 위에서 실현한다. 그래서 작품은 공간성과 시간성, 윤택함과 척박함 그리고 딱딱함과 부드러움과 같은 자연의 모든 성질을 담고 있다. 작품은 소리 없이 관람자를 불러 세워 그들이 마치 자연을 마주 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상상해보건대 성리학자들에게도 나무를 세는 학습 방법은 꽤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공간에서 자신의 비근한 일상을 대체할 매끈하고 아름답게 가공된 세상(이미지)을 체험할 수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탈 물질화 된 사이버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역으로 그 탈 물질성 때문에 누구도 그 안에서 안정될 수 없으며 언제나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에겐 그것과 반대되는 전혀 다른 감각이 필요할지 모른다. 빠른 리듬 속에서 매끈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훨씬 느리고 거칠고 손에 잡히는 그 무엇 말이다. 지금이 바로 아주 느린 속도로 그리고 지속해서 거칠고 투박한 나무를 세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