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self, yours: 박주애 Juae Park
2017년 4월의 일이다. 박주애는 작업의 돌파구를 찾아 뉴욕의 한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그러나 뉴욕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는 낯선 환경과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뉴욕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림도 두 장 정도 그리다 말았다고 한다. 그러다 광목천 위에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옆 스튜디오 작가의 솜을 빌려 재봉한 천 안에 채워 넣었다. 보고 싶은 이가 눈앞에 나타나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처음 만든 인형은 가장 보고 싶었던 남자친구였다. 박주애는 최대한 남자친구와 닮게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옷을 입히지 않은 나체의 형상으로 남자친구만이 가진 신체적 특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예술은 부재의 산물이다. ‘복제, 가짜’를 의미하는 시물라크르(simulacre)는 유령을 뜻한다. ‘형상(figure)’의 본래 의미는 귀신이다. ‘이미지(image)’의 기원인 이마고(imago)는 죽은 이의 얼굴을 떠낸 밀랍 마스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처럼 예술은 가장 극단적인 부재인 죽음으로부터 탄생했으며, 죽은 자는 (평면의 이미지든 입체물이든) 대리물에 떠밀려 부활한다. 천에 형상을 그리고, 솜을 채운 남자친구 인형은 현존이자 부재를 의미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곁에 붙들어 놓는 술책이다.
모든 사물은 목적을 갖는다. 그중 가장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인형일 것이다. 인간(혹은 동물)을 닮았지만, 아무 말이 없는 그들은 인간에게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마술적인 존재이다. ‘하얀 천 위에 얼굴을 새겨 넣고, 납작한 육신에 솜을 채워 입체화시키는 과정은 마치 영혼을 불어넣는 느낌이었다’는 박주애의 말은 그래서 과장이 아닐 것이다. 사실 인형은 그저 솜 주머니일 뿐이다. 아무리 진짜 같아도 가짜인 영혼이 없는 이 텅 빈 주머니는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기능적인 사물만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십자가나 유품은 존재만으로 그 기능이 충만하다. 물신화된 사물이 갖는 현실을 넘어서는 초월성으로 이제 당신은 더이상 불안에 휩싸인 존재가 아니다.
박주애의 인형은 반인반수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형상은 이전의 회화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2016년 작품인 <피를 데우는 시간>은 버드나무가 잠긴 목욕탕과 노루와 인간이 섞인 반인반수가 등장한다. 얼굴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서 동물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노루는 겁이 많지만, 빛을 보면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 그는 왠지 자신이 노루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완벽한 인간 형상으로 결론 짓지 못하고 동물의 얼굴을 빌려 돌려 말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못하는 갈등과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한 고백의 제스처이다.
인간이 동물화되는 것은 환유, 즉 돌려 말하기의 방식이다.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용어로 대체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원래의 대상을 부정함과 동시에 호명하는 행위다. 돌려 말하기의 매력은 대체된 말이 가지는 감성과 시적인 상징성이다. 인간의 형상은 동물의 형상과의 결합을 통해 본래 그 동물에 가졌던 특별한 인상과 상징성을 증여받는 것이다. 그래서 반인반수의 인형은 단순히 인간을 동물로 변신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이 갖는 상징성으로부터 한발 물러서는 것이다.
반인반수의 인형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박주애의 남편, 어머니와 같이 친밀한 관계, 그가 특별히 감정을 쏟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자신을 인형으로 만든 것으로 포함하여) ‘인형에 새겨진 이 인물들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박주애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분리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인 그들은 결국 왜 그들이 박주애에게 특별하냐는 질문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 그의 남편, 그의 어머니는 ‘박주애’의 알리바이를 증언하는 목격자들이다. 왜 그렇게 특별하고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가. 글쎄, 우리는 알 수 없다. 박주애가 애착을 갖고 그 인형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도 그것이 가능한가. 이 또한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여기에 바로 신비가 있다. 인형은 애당초 영혼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불어넣는 것’이다. 신비는 형상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 달려 있으며, 신비의 근원은 형식이 아닌 정신에 깃들어 있다.
This happened in April 2017. Juae Park joined an artist's residency in New York. It was a decision made in search of a new creative driver for her work. Life in Big Apple was much more challenging than she had anticipated. Between the strange environment and the language barrier, it took her 3 days before she broke down in tears. Tears fell on her paintings. There were only two; neither were complete. She tried drawing a nostalgic face on cotton cloth. She borrowed cotton from her neighbor art studio and stuffed the cotton duvet which she had now sewn to resemble a bust. It was wonderful to see such a nostalgic face come to life.
The first stuffed doll the artist made was her boyfriend who she missed dearly. She states that she wanted to draw it as close to his likeness as possible. It was not a clothed doll, and it represented her boyfriend anatomically correct in the sense that all his physical characteristics that she could recall were all present. Without a doubt, art addresses absence. Simulacre, synonymous to a replica or fake, also denotes an apparition. Figure once carried the meaning of ghost. Image was derived from the word imago, meaning the waxen mask used to lift the face of the dead. As such, art was born from the most absolute of absences; death. The dead (either in the second or third dimension) are resurrected via surrogate material. The cotton-filled doll of the boyfriend is both present and absent, a trick to anchor the invisible by the side.
All things serve a purpose. Of all things, dolls are born of the most extraordinary purpose: to captivate the human affect. The dolls embody a human (or animal) resemblance and in magical silence conjure an illusion for people to partake. Park's description that 'the process of drawing a face unto the sewn white fabric and filling the flat emptiness with cotton to give it a sense of volume, or being, was how I imagine it feels like to imbue something with a soul.' is hardly surprising. Dolls are just glorified stuffed pouches. No matter how realistic, they lack a soul, is not real, and is devoid of function. However, is it only the functional that enriches human life? For example, the crucifix or other paraphernalia serve a purpose, simply by their presence. Through the transcendent powers of a fetishized subject, fear and doubt is dispelled.
Park's dolls take on a therianthropic, that is half-man half-beast forms. They are not new to her works, as they frequently appeared in her earlier paintings. A Time to Warm My Blood (2016) shows such beings somewhere between a roe and a human in a large bath with a willow tree in the center. Park shares that she wanted to initially draw human facial features, but didn't know how, so she drew the roe instead. Roes are timid animals but have a tendency to lunge at bright lights. Park says she felt like a roe. She borrows the partial figure of a roe as a form of circumlocution as a confession of her own identity, unable to self-define and unable to claim a full upbringing into wholesome adulthood.
This form of zoomorphism is metonymy, a type of circumlocution where a term stands in for an object or concept. It is an act of denial to the original object, while also an act of designation. The charm of metonymy lies in the sentiment and poetic symbolism of the placeholder word. The human form and the animal form combine to gain the special characters and symbolism of the animal. Thus, dolls of half-man half-beasts are not merely zoomorphic depictions of human beings, but a step away from the symbol of the human form.
Who are the ones that are presented on these chimeral dolls? They are the artist's husband, a motherly and intimate relationship, and others that Juae Park gives her care wholly to. The question of who the figures are on the doll is inseparable from the question of who 'Who is Juae Park?' Those people special to the artist are defined by the answer to the question of why they are special to her. Herself, her husband, her mother are all her witnesses who complete her alibi. Why and what about is so special? Well, it has not been told to us yet. Would it be possible for us to look at the dolls the way Juae Park gazes upon them with affection? This too, is not known to us. Perhaps it is not for others to know, ever. That is where mystery lies. From the very beginning, a doll does not come with a soul, but is imbued with one. Inspired, blown in. Mystery lies not in what is beheld but in the beholding gaze, and the root of mystery lies not in the form but in the spi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