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URES: 손동현 Donghyun Son

16 August - 17 November 2018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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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손동현 작가는 동북아시아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작가가 경험한 미디어 환경이 결합된 작품을 선보여 왔다. 비서구권에서 자국의 전통과 현대의 갈등을 고민하는 작가는 비단 손동현 작가뿐만은 아니다. 그의 작품이 ‘현대적인 동양화’ 또는 ‘한국적 팝아트’로 분류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한국 현대미술에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동현 작가가 여타의 작가들과 구별되는 것은 그가 초상화를 작업의 근간에 두고 회화의 기법과 개념에 대해 꾸준히 탐구했다는 점이다. 동북아시아의 회화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있어 회화의 시초는 초상화임을 작가는 강조한다. 2005년부터 손동현 작가가 전통적인 회화 기법으로 인물의 형상을 재현해왔지만,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얼굴’을 통해 동시대의 미디어 환경과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갤러리2 중선농원의 <Figures> 전시는 손동현 작가가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제작한 초상화 작업 중에 17점을 선별하였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과 더불어 평소 전시되지 않았던 작품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작가는 하나의 주제로 통일된 연작 전체를 전시하는 방식을 유지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처럼 각 연작의 대표적인 작품을 모아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 전시는 기존의 개인전과 다른 특별한 기획 의도를 갖는다. 먼저,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넘게 작업해온 초상화 작품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물론 각 연작의 기법적인 특징이나 의도를 드러내지만, 연작의 다양한 변화들 속에서 ‘임물을 재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초상화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람자에게 던진다.

2006년 손동현 작가가 2005년에 발표한 작품 중 하나는 영화 <스타워즈>의 등장인물 다스 베이더(Darth Vader)를 그린 <암흑지주다수배이다선생상>이다. 초상화란 실존 인물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부재하는 대상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현전시키는 것이 초상화의 역할이다. 그런데 작가가 재현한 다스 베이더는 현대인들에겐 익숙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미디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이다.

영화의 주요 캐릭터를 재현하던 손동현 작가는 2008년부터 본래 초상화가 가진 의미를 충실하게 따르기 위해 실존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Portrait of the King>은 ‘팝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가수 마이클 잭슨의 초상 연작이다. 제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통적으로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을 그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가 마이클 잭슨을 선택한 이유는 실존 인물이기는 하지만 신비로운 존재로서 하나의 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은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변하기도 하지만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또한 우리가 인터넷으로 마이클 잭슨을 검색했을 때 어릴 적 사진부터 사망 직전의 모습까지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를 ‘결정적인’ 하나의 형상으로 규정할 수 없다. 이렇게 가상이든 실존이든 인물에서 시작된 초상화 작업은 2014년 개인전을 기점으로 변화한다.

변화의 출발점인 <Pine the Great>는 초상화의 형식을 띄지만, 기존 인물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회화에서 그려진 소나무를 인물화로 재해석했다. 소나무는 임금과 군자의 상징이기도 하며 벽사(僻邪)와 장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소나무가 가진 각각의 전통적인 상징과 표현방식을 인물의 성격과 외형으로 치환하여 초상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산수화를 그리는 기법이나 중국의 사혁이 주장한 기운생동(氣韻生動) 골법용필(骨法用筆) 등 그림을 제작하는 여섯 가지의 요체인 육법(六法), 먹을 물성 등을 활용하여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켰다.

<암흑지주다수배이다선생상>부터 최근작까지 <Figures>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현하는 대상과 기법의 변화를 통해 손동현 작가가 인물을 회화로 재현하는 것만 이 목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초상화란 무엇인가’라는 탐구의 결과로서, 먼저 가상의 인물을 선택해서 그림으로 재현하는 아이러니한 작업을 시작으로 실존 인물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형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을 재현한 작업 그리고 근작에서는 인물을 재현한다기보다는 초상화의 형식을 통해서 동북아시아 회화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매체의 특성을 담아낸 작업까지 세 가지의 큰 변화를 보인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흐름은 교묘하게 전통적인 초상화의 작화법이나 정신성을 순응하면서 또 한편으론 불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초상화 작업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로 비치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것은 작가 스스로 초상화란 단순히 인물의 형상을 재현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큰 세 가지의 변화 속에서도 손동현 작가의 작품을 이어주는 맥락은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문물의 외형적인 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인격과 내면세계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초상화론인 전신사조(傳神寫照)가 아닐까 한다. 각 작품에 담겨 있는 내면세계가 바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갤러리2 중선농원의 손동현 개인전 <Figures>는 인물의 형상을 통해 진정으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