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에는 이름이 없다 Nameless Background: 김태연 Taeyeon Kim

31 October - 30 November 2024 SEOUL
Works
스탠드 Flat Stand,  스테인리스강 관 stainless steel square tube, 166(H)x200x3c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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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이름이 없는 것에 굳이 다시 이름을 붙이지 않는 시도, 바탕인 것을 이름 없이 바탕이라 말하는 시도. 김태연의 전시 《바탕에는 이름이 없다》는 지시나 명시 없이 바탕을 불러온다. 명명(命名)은 이름을 부르는 이와 이름이 불리는 것을 구별한다. 관계 맺기가 일방적 방향성으로 형성된 둘의 사이에서 구체적인 부름과 불림의 일은 그어진 경계를 들추기만 한다. 김태연의 전시에는 조각의 삶과 일반의 삶을 포괄해 ‘부’를 이루는 사물들이 놓여 있다. 예를 들면 조각을 받치는 좌대, 조소용 흙을 견디는 심봉대, 카메라를 지지하는 삼각 다리, 파티션을 세우는 스탠드 등이다. 김태연은 이들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거나 이들이 ‘주’로 격상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각각의 역할을 상기할 수 있도록 그것이 본래 놓였던 모습을 옮겨 온다. 달리 말해 이기적인 구별하기, 경계짓기가 아니라, 구별을 흐리고 경계를 무화하여 사물을 바라보는 중립적 태도를 끌어냄으로써 이름 없는 것이 호명될 방식을 찾는다.


전시에서 ‘부’로 이해한 사물은 중심이 되는 물체, 즉 ‘주’로 파악한 사물을 보조하는 것들이다. 특히 다리나 지지대처럼 전체 사물의 핵심적인 부분을 떠받치는 일종의 노동을 하기 위해, 마치 배경(background)처럼 마련된 주변 장치다. 보조는 그것의 쓰임에 중심의 쓰임을 전제할 수밖에 없고, 쓰임의 최종 국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부산물로 치부된다. 그러나 보조의 부재는 중심을 무너뜨려 전체의 불완전한 귀결을 견인해 버릴 수도 있다. 전시가 말하는 주목받지 못함이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 없음의 상황이 ‘부’로서 자신들의 쓰임을 잘해 낸 유효한 결과로 작동함을 가시화하려 한다. 작가의 말을 빌려, “무음에 가까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 “그것 자체가 두드러지는 특징을 갖지 않는 것”이 이 사물들의 성격이며, 또 그러한 모습을 인지하는 일이 우리가 이들의 가치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사물은 조각의 모양이 되어 공간을 점유한다. 이 글이 쓰이는 지면에도 이들의 자리를 하나하나 내어 본다. 〈스탠드〉와 〈삼각 다리〉는 각각 물구나무서기, 체조 등의 운동에 쓰이는 바(bar) 형태 스탠드와 카메라를 얹을 때 흔들리지 않도록 3개의 봉을 조합해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다리다. 두 조각 모두 본래의 형태를 모방하되 크기, 재질, 표면 등 전체적인 형상이 변형되었다. 실제보다 확대된 크기는 원형이 가진 세부(detail)를 강조하고, 나무와 알루미늄은 은색 스테인리스로 변환되며 사물이 점하는 위치를 일상이라는 현실을 넘어 조각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바꾼다. 표면은 조각의 바깥을 반사하도록 거울처럼 처리되어 사물 근처에 이를 보는 이의 시선에 담지된 ‘보기’가 있음을 나타낸다. 〈파티션 스탠드〉, 〈파이프 스탠드〉, 〈안전지지대〉는 제목으로 붙여진 것처럼 사물이 기존에 쓰인 방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동일한 모양을 여러 번 반복하여 붙이거나 나열하여, 연결되고 결합된 양태로서 모임의 형상을 제시한다. 〈심봉탑〉과 〈종〉은 다른 조각보다도 작가의 자의적인 구성이 덧대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조각들이 대체로 기존 사물의 모양을 따르는 반면, 두 작업은 실제의 쓰임, 모임의 형태에 더해 ‘탑’, ‘종’처럼 본래의 원형을 딛고 새로이 재건된 사물이자 조각으로 이행한다. 나아가 〈기브〉는 모서리 보호대로 사용되는 삼면의 스티로폼을 주물에 본뜬 것으로, ‘부’ 역할이 제공하는 노동의 일 자체를 환기한다. 이는 ‘주기(give)’와 그 반대에 놓인 ‘받기(take)’의 역학을 상기시키며 사물과 조각의 문제를 사용자나 감상자에게 주어진 관계 맺기라는 숙제, 그 속에서 설정되는 태도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한다.


한편, 실용적인 기능이 분명한 일상 사물에 기반해 이를 조각으로 변주하는 실험은 과거 조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져 왔다. 김태연은 그러한 조각의 역사적 변천을 배경으로 인지하고 활용하면서, 지금 이곳에 선 자신에게 당도한 현실의 문제를 조각에 끌어들인다. 그가 주목하는 ‘부’ 역할의 사물들은 단지 건조한 덩어리로서 물체나 조각이 놓이는 환경 개념을 고찰하기 위해 소환되었다기보다, 그것들이 지닌 근원적인 정체성에 작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존재의 의의를 충분히 길어올리고자 만든 장 위에 묵묵하게 놓였다. 이름 없는 것을 이름 없이 부를 방법, 바탕인 것을 바탕인 채로 바라볼 방법이 그가 궁리하는 호명의 방식이다. ‘부’의 노동이 없는 곳에 ‘주’의 있음도 없다. 그리고 여기서 ‘부’를 주목하는 일은 주목받는 개체의 나열이 아닌 공평한 총체를 구성함으로써, ‘부’가 지닌 깊숙한 본질을 솟아낸다.


Nameless Background explores an intriguing ontological proposition: leave the unnamed pre-reflective; acknowledge the ground simply as ground. The exhibition reveals the foundational without recourse to designation or explicit reference. The very act of naming (命名) establishes a hierarchical distinction between the naming subject and the named object, where the unidirectional nature of this relationship serves to reinforce their boundaries.

 

Kim Taeyeon's exhibition presents objects that exist as subsidiary (部) elements in both sculptural and quotidian contexts: pedestals supporting sculptures, armatures bearing sculptural clay, camera tripods, and partition stands. The artist neither elevates these objects to the status of primary (主) elements nor renders them objects of sympathy. Instead, she transplants them in their original state, seeking to evoke their inherent functions. This approach suggests a methodology for addressing the unnamed that dematerializes rather than reinforces boundaries, rejecting arbitrary categorization.

 

In the exhibition context, these subsidiary elements exist as background infrastructure; supports for primary objects. Like load-bearing structures to meaning, they perform the essential labor of supporting the whole. While these supporting elements necessarily indicate a center and are often dismissed as merely peripheral, their absence would mean the collapse of the entire system. Curiously, the exhibition does not advocate the seeing of the overlooked. Rather, it suggests that their very inconspicuousness as proof of their perfect functionality. As Kim notes, these objects' essence lies in "performing their role in near silence" and "lacking distinguishing features"—understanding this is key to appreciating their worth.

 

These objects occupy the exhibition space as sculpture-like forms. Stand and Tri-Leg reinterpret gymnastics stand and camera tripod, respectively, maintaining their original forms while altering scale, material, and surface. Exaggerated dimensions emphasize their details, while the transformation from wood and aluminum to reflective stainless steel translates mundane objects into the uncertain realm of sculpture. Their mirror-like surfaces incorporate the viewer's gaze into the work itself.

 

Partition Stand, Pipe Stand, and Outrigger reveal their original functions through their titles while creating new assemblages through repetition and seriality. Armature Tower and Bell demonstrate stronger artistic intervention—unlike previous works that closely followed existing forms, these pieces reconstruct their original functions with additional metonymies to tower and bell. Give, cast from triangular protective styrene foam, invokes the labor performed by subsidiary elements, expanding into questions about the dynamics of giving and taking, and the relationships and attitudes surrounding objects and sculptures.

 

While the reinterpretation of mundane, functional objects as sculpture has been a seen many times over in sculpture, Kim borrows from sculpture’s historical context and lays it down as background, addressing her contemporary concerns through this unique methodology. Her focus on subsidiary objects transcends mere ecological consideration of sculpture; these objects quietly occupy a space that reveals their fundamental identity and existential value. The artist seeks ways to call upon the unnamed as thy are—unnamed, to see the ground as ground. Without the labor of the subsidiary, the primary may not exist. Thus, attention to the subsidiary isn't simply an enumeration of overlooked elements but a revelation of their essential nature through the creation of a balanced tot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