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rmur: 고정균 Jeongkyun Goh
갤러리2는 두 개의 독립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프로젝트 〈Two Too〉를 선보인다. 〈Two Too〉는 동시대 지형과 문화가 당면한 현재를 관찰하는 차세대 작가 2인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우리가 직면한 변화의 흐름과 전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번 전시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사이에서 발견한 풍경을 조각의 배치로 재구성하는 홍자영, 미디어 매체 간의 관계 맺기를 통해 주체의 의미를 탐구하는 고정균을 소개한다.
첨단의 기술이 우리를 어디까지 밀어낼 수 있을까? 미디어가 지닌 힘이 생활의 미세한 곳까지 주도하는 권력으로 작용한다면, 이곳에서 우리가 주체로서 뿌리내릴 곳은 어디일까? 《murmur》는 미디어 장치들이 주고받는 영향을 가시화하여 투명한 표면 아래 잠재되어 있던 ‘노이즈’를 끌어낸다. 바위 치기가 컴퓨터 게임이 되고, 수동 필름을 디지털카메라가 대신하고, 원고지 교정을 AI에 맡겨 나간 것처럼, 어쩌면 세계는 점점 더 부스러기를 남기지 않는 매끄러움을 증식해 내는 일에 몰두하는 듯하다. 전시는 그러한 시대의 방향성에 맞춰 작동하는 미디어의 이면에 본래의 의도로부터 배제된 것들을 추출한다. 이 행위가 누락되고 제거된 것을 관찰함으로써 우리의 실존을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murmur〉(2025)는 입력과 출력을 담당하는 장치들이 맞물려 상호적인 피드백을 발생시키는 공간 맞춤형 설치다. 개별 기기의 작동 신호는 다른 신호의 영향을 반영하며 실시간으로 이미지, 소리, 움직임을 도출한다. 디지털카메라 3대, 빔 프로젝터 3대, 마이크 6개, 스피커 4대, 거울 1개, 선풍기 2대, PC 1대로 구성된 집합은 세 세트의 비디오 피드백 모듈, 한 세트의 오디오 피드백 모듈로 나뉜다. 각 장치는 본래 부여된 근본적으로 기능적인 일을 수행하되, 최초에는 의도되지 않았던 결과를 산출한다. 이는 세트로 결합되고 집합으로 모이며 서로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값이다. 최소한의 픽셀로 부드러운 표면을 구사해야 할 것 같은 빔 프로젝터의 화면에는 글리치처럼 일그러진 색면만이 띄워지고, 잡음을 깔끔하게 제거해 청아한 소리만을 남겨 들려줄 것 같던 스피커는 선풍기가 회전하며 내는 소음을 거슬리게 왜곡하고, 심지어는 카메라, 빔, PC 등이 작동할 때 잠잠히 새어 나오는 기계음조차 낚아채 전달한다. 생산자가 소비자의 필요를 고려해 만든 것이 제품이고 제품의 작동법대로 구동하는 것이 장치에 의도된 역할이라면, 〈murmur〉를 구성하는 장치들은 그러한 보편적으로 합의된 기대에서 이탈한다. 그 대신 증폭하는 노이즈를 곳곳에서 생성하며 근본적인 기능, 의도된 역할이라는 말로 상실된 장치의 실재성을 찾아 나서는 일에 동참한다.
장치의 실재성을 찾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론적 가치를 발굴해 세상을 바꾸려는 낙관적인 전망도, 세계가 지속하는 기술적인 확장을 목도하며 침잠하고 물러나려는 비관적인 단념도 아닌 그사이의 진동과 같은 흔들거림에 머무르는 일이다. 중얼대는 혼잣말(murmur)은 청자를 상정하지 않아도 괜찮고, 단지 머뭇거림에 지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짐작하건대 이러한 고찰은 연필을 들고 종이에 받아쓰기를 하던 시절과 휴대전화 스크린을 넘기며 빠르게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절을 모두 경험한 이가 감각하는 시차인 듯도 하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말을 따라, 보편은 보편으로 정의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기가 불가능하기에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보편적이라 불리는 것들은 여타/기타의 가능태를 지나쳐 가장 손쉽고 편리하게 압착되어 버린 본질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 꽤 회의적이지만, 실재성 찾기란 동시에 세상이 주도하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너그럽게도 포용적인 자세를 일관하려는 열망에 다가선다.
《murmur》가 구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고정균의 부업이 사진을 찍는 일이라는 사실과 불가분하다. 〈murmur〉는 그가 생계를 위해 다루는 사진 촬영용 장치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주로 전시의 전경 사진이나 작품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그에게는 기록자로서 피사체를 명료하게 포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는 이를 잘 수행하고자 대상이 지닌 색과 분위기에 맞춰 카메라 내의 여러 값을 조절하고, 보정 소프트웨어로 사진을 옮겨 오점을 지우고, 실은 현장에 도착해 주변 바닥 청소 등의 환경 조성부터 시작한다. 여기서도 사진의 표면이 꺼끌대지 않고 매끄러워지도록 일종의 노이즈를 제거해 가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지울수록 사진은 점점 투명성을 얻어 간다. 〈PEEK〉(2023)은 이러한 현상에 관한 소고로써 제거된 대상에 자기 자신도 포함됨을 깨달은 그의 이야기를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다. 먼지나 콘센트, 날아간 색보다도 카메라 뒤에서 촬영 버튼을 누르는 사진가가 더 먼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브이로그 형식의 어설픈 자막(타자에게 전달하는 말로서)과 외롭게 되뇌는 독백(자기 안에서만 맴도는 말로서)이 노이즈로 점철된 자신이 주체로서 지닐 수 있는 의미에 질문을 남긴다. 이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 달리 말해 중앙이 되지 못하는 외곽, 테두리, 가장자리 같은 변두리에 설치된 채 상실된 주체의 중얼거림에 주목해 볼 것을 제안한다.